약점부터 보여줘라 ― 영화 「마이클」이 가르쳐준 공감 자산(Empathy Asset)의 법칙

『씬 너머의 기획』 시리즈 1편 · 영화 「마이클」이 기획자에게 남긴 4가지 질문 中


영화 「마이클」을 보고 나오면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던 건, 의외로 ‘영화에 없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아동학대 의혹도, 약물 이야기도, 평생 그를 따라다니던 인종 정체성에 대한 의심도 1부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한 가지를 끈질기게 비춘다. 무대 뒤에서 아버지의 매를 피해 도망친 어린 마이클, 형제들과 햄버거 하나를 나눠 먹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한 아이의 얼굴. 그 아이가 짓는 미소의 어색함, 그리고 카메라가 꺼졌을 때 다시 굳어버리는 입꼬리.

처음엔 이게 단순한 미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서면서 어쩌면 이건 미화가 아니라, 매우 정교한 설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관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공연자 — 정점에 선 한 인물의 외로운 순간
관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마이클 — 정점에 선 한 인물의 외로운 순간

영화에 ‘없는 것들’이 말해주는 것

2부작으로 쪼개진 이유는 단순한 분량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을 분배한 게 아니라, 정서를 분배한 것으로 보인다.

1부 내내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마이클의 편’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그가 약했기 때문에. 그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욕망 ― 친구들과 뛰어놀고, 평범한 햄버거를 먹고, 부모에게 안기고 싶었던 욕망 ― 을 가졌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이클 영화 그 서막을 알린다!

내년에 공개될 2부가 어떻게 풀릴지는 사실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감독의 의도도, 어떤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도 모두 추측의 영역에 있다. 다만 1부의 설계를 보고 있으면, 2부에서 다뤄질 어른 마이클의 어두운 챕터들이 단순한 폭로의 톤으로 그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같은 사람의 같은 사건이라도, 1부를 보지 않은 관객과 1부를 본 관객은 아마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전자에게는 ‘혐의자 마이클’이 보일 것이고, 후자에게는 ‘상처받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만든 비극’이 보일 것이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무형의 무언가를 한 단어로 부른다면, 공감 자산(Empathy Asset)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인 이슈를 다루기 전에, 청중의 마음에 미리 적립해 두는 정서적 신뢰의 잔고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왜 항상 ‘해명부터’ 하려고 할까

이 구조는 기획자라면 한 번쯤 자기 것으로 만들어볼 만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부정 이슈가 있는 브랜드를 다시 시장에 꺼낼 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해명부터 하려 한다.

“사실은 이러이러했다.”
“오해가 있었다.”
“지금은 이미 개선됐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메시지는 신뢰 잔고가 0인 상태에서 출금을 시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받는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변명으로 들리고, 방어적으로 보이며, 그러는 사이 청중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해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메시지의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받아낼 그릇이 아직 청중 마음에 만들어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영화 「마이클」이 1부 내내 정성껏 만들어낸 게 바로 그 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함을 먼저 꺼내는 순서

영화가 보여주는 순서를 기획의 언어로 번역해보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약점을 보여줄 것.

기원의 이야기, 인간적 한계,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환경부터 말한다. 받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 브랜드(혹은 사람)도 한때 그저 약한 존재였구나”라는 정서가 자리 잡게 한다. 그제야 비로소 강점도, 해명도, 비전도 출금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원칙은 단지 위기관리 PR에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모든 첫 미팅, 모든 제안서, 모든 키노트의 첫 5분에 적용되는 원리가 아닐까.

  • 스타트업 IR 덱: 첫 장이 “시장 규모”가 아니라 “창업자가 왜 이 문제에 미쳤는가”여야 투자자의 마음이 열린다고들 한다. 그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인 것 같다.
  • B2B 제안서: 우리 회사의 화려한 실적부터 나열하면 “잘난 척”으로 읽히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안다”로 시작하면 청자의 귀에 다르게 도달하는 것 같다.
  • 면접: 강점만 나열하는 지원자보다 약점을 솔직히 다루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하는 지원자가 더 깊은 신뢰를 얻는 것도 비슷한 구조일 것 같다.
  • 창업자 인터뷰: “성공 스토리”보다 “가장 무너졌던 순간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되는 것 역시, 약함이 신뢰의 입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약점을 보여준다는 것의 진짜 의미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오해는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약점을 먼저 보여준다”는 것은 무조건 자기 비하를 하라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속 마이클도 자신을 “불쌍한 아이”로 그리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보편적 약함 ―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평범해지고 싶었던 갈망, 어쩔 수 없는 환경 ― 을 정직하게 드러낼 뿐이다.

기획자가 다루는 모든 브랜드와 인물에는 이런 “보편적 약함의 챕터”가 있는 것 같다. 그 챕터를 정직하게 꺼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자기 메시지를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약함을 통해 청중과 같은 평면에 서야, 그 다음에 펼치는 강함이 위협이 아니라 응원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마무리하며

마이클이 끝까지 갈망했던 건 거대한 무대가 아니라 평범한 어린 시절이었다는 것이, 영화가 1부를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인 것 같다. 그 약함을 가장 먼저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우리에게 그를 미워하지 않을 권리를 양도해주는 듯하다.

기획자가 할 일도 어쩌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가 다루는 모든 브랜드, 모든 제품, 모든 인물에게는 약함의 챕터가 분명히 있다. 그 챕터를 가장 먼저 펼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청중의 마음 가장 깊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약함을 먼저 꺼낸 사람만이, 결국 강함을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다 ― 영화 「마이클」 1부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이자, 어쩌면 가장 오래된 기획의 원칙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편 예고 ―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 ― 매력적인 주인공의 설계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 캐릭터 구조에 숨어 있는 비밀을 함께 풀어볼 예정입니다.

#씬너머의기획 #영화마이클 #스토리텔링 #브랜딩 #공감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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